
현실과 신화가 뒤섞인 일본 최초의 역사서에는 색을 나타내는 말이 네 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로 어두움, 밝음, 뚜렷함, 흐릿함이라는 범주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오래된 말들은 白 시로(하양), 黒 구로(검정), 赤 아카(빨강), 青 아오(파랑/초록)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민족에게 처음에는 색의 종류가 이렇게 적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색은 지각보다는 훨씬 더 문화의 문제이며, 초록과 파랑의 뚜렷한 구별은 하양, 검정, 빨강의 구별보다 언어에 늦게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언어들은 파랑과 초록을 한 단어로 묶어 불렀고, 지금도 그런 언어가 있다.
우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몇몇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묘사에서는 아주 정확하지만, 색의 농담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글라우코스’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초록, 파랑, 회색을 모두 가리키고 때로는 노랑이나 갈색까지 뜻한다. 그래서 물빛에도, 눈동자에도, 나뭇잎에도, 꿀의 색에도 구별 없이 쓰인다.
이제 일본에서의 파랑과 초록의 구별로 돌아가 보자.
첫 천년기가 끝나 갈 무렵인 헤이안 시대(794~1185)에 초록을 뜻하는 일본어 미도리(緑)가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여전히 파랑의 한 종류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떤 모호함이 생겼다. 지금도 초록색인데 파랑 계열의 말로 부르는 것들이 있다. 아오린고(青林檎, 파란 사과)는 사실 초록색이다. 초록 대나무는 아오다케(青竹, 파란 대나무)라고 부른다.
여기서 일본의 신호등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신호등의 초록불을 青信号(아오신고)라고 부른다. 최초의 신호등은 1930년에 미국에서 들여왔는데, 분명히 초록색 불이었다. 그런데도 공식 문서에서는 미도리(초록)가 아니라 아오(파랑)라는 말로 신호등을 불렀다. 알맞은 말인 미도리를 써야 한다는 언어학자들의 주장과 신호등에 관한 국제 관례를 따라야 할 필요 사이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1973년, 정부는 내각령으로 신호등에 최대한 파랑에 가까운 초록을 쓰도록 정했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초록이지만, 아오라는 이름을 계속 써도 될 만큼 충분히 파란색이다. 현대 일본어는 파랑과 초록을 분명히 구별하지만, 초록의 색조까지 품은 파랑이라는 개념은 지금도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일본의 파랑
이번에도 한 식물이 우리를 일본과 이어 준다. 지난번에는 멸종한 식물 실피움이었다. 그 씨앗이 지금의 사랑의 이모지 모양으로 이어졌다. (놀라운 이야기는 이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하트 모양 이모지❤️ )

이번에는 지금도 일본에서 재배되는 식물이다. 중국 남부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마디풀과의 꽃 피는 식물, 페르시카리아 틴크토리아(Persicaria tinctoria), 곧 쪽이다. 사무라이의 파랑, 일본의 파랑! 藍(아이). 사랑을 뜻하는 愛(아이)와 소리가 같아서 사랑의 색으로도 여겨진다.
쪽은 인류가 아는 가장 오래된 식물 염료로, 고대 이집트 같은 곳에서 수천 년 동안 쓰였고, 쪽물을 들인 천에 싸인 미라도 발견되었다. 일본에는 8세기나 9세기 무렵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고, 다른 많은 것들처럼 곧 일본만의 독특한 색깔을 띠게 되었다.
일본에서 쪽 염색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헤이안 시대(794~1185)로, 이때 쪽빛은 가장 높은 지위의 귀족이 쓰는 색이었다.

우키요에의 거장 히로시게의 목판화 「와카무라사키」에는 히카루 겐지가 무라사키노우에를 처음으로 엿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야기의 배경인 헤이안 시대(794~1185)의 궁정 생활은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기모노로 가득했지만, 「와카무라사키」 속 겐지의 기모노는 흰 격자무늬가 들어간 차분한 짙은 파랑이라 눈에 띈다. 일본의 쪽 염색을 보여 주는 가장 이른 모습 가운데 하나다.

두 번째 시기는 12세기로, 사무라이들은 갑옷 밑에 쪽빛 옷을 입었다. 피부를 여러 질환으로부터 보호하고 시원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쪽에는 항균 효과도 있어서, 세균에 감염된 칼에 베인 상처가 더 빨리 나았다.
사무라이가 쪽을 사랑한 덜 알려진 이유가 있다. 쪽빛 가운데 가장 짙은 색을 일본어로 ‘가치’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기다’라는 뜻의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쪽은 미신을 잘 믿던 당시 일본 무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는 에도 시대(1600~1868)에 찾아왔다. 이때 쪽은, 말하자면 대중에게 퍼졌다. 쇼군은 평민들에게 너무 화려한 색의 옷을 금지하고, 입을 수 있는 색을 파랑, 갈색, 회색 같은 차분한 색조로 제한했다. 덕분에 쪽은 그 아름다움과 쓸모로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귀족만 비단을 입을 수 있었는데, 무명과 삼베도 쪽으로 비교적 쉽게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곧 일본에는 쪽빛 열풍이 일었다. 상인부터 농민까지 모두가, 앞서 말한 사무라이들처럼 쪽의 약효(와 벌레를 쫓는 효과)에서 실용적인 쓰임새를 많이 찾아냈고, 일상생활 거의 모든 곳에서 쪽을 쓰기 시작했다. 1874년 일본을 찾은 영국의 화학자 R. W. 앳킨슨이 평민들 사이에서도 쪽물 들인 천을 너무 많이 보고서 그 색을 ‘재팬 블루’라고 이름 붙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쪽은 불에도 강해서 815℃까지 견딘다. 1657년 3월 2일 에도(지금의 도쿄) 서쪽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화재 때, 막 생겨난 소방대원들의 몸을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드러났다

에도 시대는 대체로 평화로웠고, 이는 사회에서 사무라이의 역할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유교를 따르는 사무라이 엘리트는 ‘자질구레한 장사의 일’과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경제가 바뀐다는 것은 사무라이 계급도 바뀐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다이묘(봉건 영주)들의 상업에 대한 관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쪽 생산은 귀한 수출품이 되기도 했다.
프러시안 블루
가장 유명한 우키요에,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1830~1831)는 파랑을 아주 넉넉하게 쓴다.

여기에 쓰인 안료는 프러시안 블루로, 1820년대부터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들어온 합성 색이다. 그때부터 그야말로 ‘파랑의 혁명’이 일어나, 온통 파랑으로만 찍은 목판화 아이즈리에(藍摺絵)가 널리 퍼졌다.
파랑의 상징
순수
파랑은 하늘처럼 순수하고 맑은 모든 것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처럼 일본 문화에서도 순수는 아주 소중히 여겨지는 성질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보통 파란 천에 싸인다. 파랑은 임신한 여성이나 남편감을 찾는 여성도 자주 입는다. 파랑이 많은 문화에서 비슷한 뜻을 지니는 것은 아마 물과의 연관 때문일 것이다. 또 특히 아시아 나라들에서 쪽이라는 식물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안료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합성 안료와 공업용 염료의 시대가 오기 전, 쪽은 옷에 널리 쓰인 인기 있는 염료였다. 그래서 여러 상서로운 행사와 만남에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직조공이나 천을 물들이는 일을 맡은 사람들은 파랑이 아니라 흰옷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여성스러움
파랑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옷 색깔이며,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40%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여성이 입는 기모노에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이기도 하다. 파랑은 순결과 여성스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파랑은 남자의 색, 분홍은 여자의 색이라는 서양의 인식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서양에서 여자아이나 어린 소녀를 위해 고르는 물건 가운데 파란 것은 드물다. 옛날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마음과 몸의 순수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파랑과 여성스러움의 연결도 아마 순수, 순결과의 연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스포츠 속의 파랑
축구
파랑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의 색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사무라이 블루’라고 불리는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나라를 대표해 나간 도쿄 대학 팀이 이 색을 입고 대회 첫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이 색을 지켜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본다운 징크스 그대로 파란 유니폼이 이어져 왔다. 파랑은 전통적으로 행운의 색 가운데 하나로도 여겨진다.

올림픽 로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파랑이 선택되었고, 그 색조는 아이, 곧 쪽빛으로 정해졌다.